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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 은혜로다
“시작됐네 / 우리 주님의 능력이 / 내 삶을 다스리고 / 새롭게 하네
자유하네 / 죄와 사망으로부터 / 나의 삶은 변하고 난 / 충만하네
은혜로다 주의 은혜 / 한량없는 주의 은혜
은혜로다 주의 은혜 / 변함없는 신실하신 주의 은혜”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며 감사의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은혜이기 때문에, 은혜라는 짧은 단어 한마디의 파워가 너무나 강력하기에......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몇 가지를 나눠봅니다.
첫째, 허허벌판 옥수수밭에 깃발을 꽂게 하신 은혜
다음 세대를 위하여 헌신한 개척세대 헌신자들의 믿음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발을 내딛는 담대함과 믿음의 유산을 주신 은혜가 넘칩니다. 그 깃발을 시작으로 기도하던대로 만방에 즉 온 열방에 깃발을 꽂는 제자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둘째, 세상과 다른 교육을 하게 하신 은혜
만방은 개교부터 지금까지 기존에 볼 수 없는 교육을 이루어 가도록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No. 1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Only 1의 ‘학교 이상의 가족, 교사 이상의 목자, 학생 이상의 제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셋째, 코로나19 등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명감을 부어주신 은혜
개척세대의 선배 선생님들의 믿음과 헌신을 이어받고자 다윗과 같은 개척정신에 이어 솔로몬 같은 지혜를 간구하며 오로지 학생들을 바라보며 모든 휴가와 개인 시간을 반납해 가며 24시간 360도로 대관령 캠퍼스를 개척하고 온라인을 통한 전 세계와의 소통을 더욱 맛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넷째, 만방의 교육에 함께 힘을 합치는 부모님들을 주신 은혜
‘내 자녀만 자식이 아니라, 만방의 자녀들 모두 나의 자식이다’라는 일체감으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가기 위하여 믿음 가운데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는 부모님들을 허락하셨습니다.
다섯째, 스펙보다 은혜를 간구하는 제자들을 주시는 은혜
만방에서 은혜는 과거완료가 아닌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의 학생들 한명 한명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서투르고 이기적이며 세상 속에서 옳고 그름의 분별력이 부족했던 학생들이 나날이 변화를 체험하며 그분의 은혜를 경험하여 은혜를 나누는 사랑스런 학생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화려한 스펙을 만들어 좋은 대학에만 가고자 하는 썩어질 것을 구하는 제자들이 아니라 ‘공부를 예배로’ 여기며 순간순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어 아벨의 제사를 드리길 원하는 제자들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날마다 큰 은혜를 경험합니다.
받은 은혜를 열거하자면 지구를 몇 바퀴 돌아도, 바다의 모래를 세어도, 그리고 하늘의 별을 세어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은혜가 가득합니다. 우리가 감히 외칠 수 있는 말은,
“I am nothing. God is all things.”
우리는 부족한 존재이었지만 그분이 들어서 쓰시면 그 어떠한 예리한 칼 보다 날카롭게 하시는 은혜로 은혜의 만방학교라는 고백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넘치는 은혜 가운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위의 가사 내용을 기쁨과 감사로 고백하는 가정이 되시길 항상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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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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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예훈 기쁨이 가득한 삶
‘이렇게 하는 것이 맞을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을까요?’, ‘수학 공부를 더 해야 할까요, 영어 공부를 더 해야 할까요?’ 등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있지만, 더 준비해야 할 것은 없을 지에 대한 분주한 마음을 학생들로부터 읽게 됩니다. 이 때 떠오르는 인물 한 명이 있습니다. 바로 마르다입니다.
마르다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사람들에게도 잘 하는 우먼파워가 대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께 드릴 음식을 준비하고 있던 마르다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 마리아를 보며 마음이 더욱 분주해집니다. 준비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나머지 예수님이 집에 오신 기쁨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그런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로 하여금 나를 돕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마르다를 두 번이나 부르시며 자신을 위하여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마르다의 마음과 성향을 이해해주시면서도, 그중에 몇 개만 해도 좋고, 한 가지만 해도 좋다고 하시며 기쁨이 빠진 섬김을 지적해 주십니다.
마르다의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과 관련된 한자 두 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忙, 두 번째는 愛입니다. 忙(바쁠 망)의 구성을 살펴보면 좌변에 마음 심(心), 우변에는 망할 망(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쁨 가운데 있다보면 마음을 잃기 쉽다는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愛(사랑 애)의 구성을 보면, 사람의 정 가운데에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마음을 굳건히 지키며 생활한다면 우리를 바쁘게 하는 것들은 사랑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우리는 분주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바쁨과 분주함을 기쁨이 담긴 사랑의 섬김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곤 합니다.
봄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학기 내내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학기 초에는 격리, 귀가/귀교, 매일 코로나 검사, 격리 기간 온라인 수업 등의 추가적인 일정들로 만방의 학생들, 선생님들, 그리고 부모님들의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은 한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습니다. 매일 아침 함께 모여 “우리 안에 분주함으로 인하여 기쁨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고, 그 기도는 “선생님들 마음의 기쁨이 학생들에게도 전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만방의 학생들이 매일의 많은 일들가운데 분주함보다는 진정한 기쁨의 삶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기쁨의 에너지를 전하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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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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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하진 함께 하는 공동체의 비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과연 우리 자녀들이 소금일까요? 완전한 소금은 예수그리스도 뿐이십니다. 우리 자녀들은 소금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9장 50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Have salt in yourselves)”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완벽한 소금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우리 속에 소금을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가 담겨있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소금과 같은 성품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소금이 필요할까요? 그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소금은 존재 자체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소금은 ‘소란스럽게’가 아니라 ‘소리 없이’ 작은 양으로도 음식의 맛을 변화시킵니다. 리더십이란 힘으로, 돈으로, 인기로 발휘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금의 선한 영향력은 목에 핏대를 세우지 않아도,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 올리지 않아도, 눈을 부릅뜨지 않아도 됩니다. 조용히 한마디 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신뢰하며 따른다면 그 사람은 소금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 허영, 외모지상주의, 인정받고자 하는 강한 욕구, 질투, 편가르기는 공동체를 소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 소금의 성품은 공동체를 아름답게 합니다.
둘째, 소금은 녹아질 때 빛을 만들어 냅니다.
소금의 화학식은 NaCl(염화나트륨)입니다. 소금물이란 나트륨 양이온과 염소 음이온의 느슨한 결합으로 물에 녹아있는 상태입니다. 음이온과 양이온은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체도 없이 녹아질 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빛입니다. 즉 소금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지는 빛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결정체가 녹아짐으로 만들어지는 빛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빛이 되셨습니다.
셋째, 성경시대의 소금은 미네랄이 풍부하여 건강에 좋습니다.
사해소금, 히말라야 핑크소금, 블랙소금 등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새하얀 색의 소금이 아닌 컬러풀 하다는 것은 미네랄이 아주 많다는 의미입니다. 즉 미네랄 성분들이 건강을 위해 인체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이, 미네랄이 풍부한 소금 같은 존재는 공동체의 건강에 필수 요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대화할 때 소금으로 맛을 내듯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만방인은 마음의 미네랄이라 할 수 있는 긍정과 배려, 섬김, 인내 등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사람들, 바로 그들이 만방인들입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로새서 4:6)
넷째, 소금은 녹아질 때 남을 높이는 존재가 됩니다.
두 개의 컵이 있습니다. 한 컵에는 수돗물이 담겨있고, 다른 컵에는 소금물이 남겨 있습니다. 그리고 계란을 하나씩 컵 안에 넣을 때 수돗물 컵에서는 계란이 가라앉지만, 소금물 컵에서는 부력의 힘으로 계란을 위로 띄워줍니다. 즉, 소금은 녹아지면 남을 높이는 존재가 됩니다. 빌립보서에서도 ‘각각 남을 나 보다 낫게 여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어주시며 자기보다 제자들을 높이셨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만방합창단이 전중국예술제에서 기적같은 Grand Prize(대상)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합창단원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학생들도 기도로 대회에 참여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녹아지는 소금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높여주어서 가능했던 결과입니다.
다섯째, 소금은 형태는 고체에서 액체 등으로 형체가 바뀔지언정 사라지지 않고, 녹아져도 소금의 특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거기에 소금이 있습니다. 자신의 특성을 잃어버리지도 않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님처럼 동일한 소금, 그 자체입니다. 그러고 보면 소금은 예수님과 가장 닮은 지구상의 물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
만방의 자녀들, 그들에게는 소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만방에서 훈련받으며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미네랄들을 섭취해 더욱더 좋은 소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대되지 않습니까? 조용하지만 카리스마 넘치고, 공동체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놀라운 존재가치를 소유하고, 녹아지지만 변질되지 않는 소금으로 파워풀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당신의 자녀입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여러분 안에 소금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부관계에서, 자녀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에서 화목과 기쁨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완전한 소금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머무시길 기도합니다.
“…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마가복음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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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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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훈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
“강사님께서는 고고학을 하는 이유는 진리를 알아가며 그 안에서 살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강사님은 이스라엘 지역에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성들, 그리고 성벽들을 발굴하셨다고 했다. 즉 성경에 나와 있는 것들을 믿으며 진리인 성경을 따라가는 발자취라고 생각된다. 고고학이든, 경제든, 음악이든, 엔지니어링이든 내가 어느 분야에 있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그 분야 안에서 그분의 놀라우신 섭리를 발견해 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강사님의 인생철학이 너무 감동되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땅을 파서 유물이 나오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그저 하나님이 열어 놓으실 다른 문을 기대하며 열심히 땅을 파신다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고고학은 우리 인생과 비슷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열심히 판다고 해서 다 주시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현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을 열어두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위의 글은 두 학생이 단오절 기간 고고학 세미나를 듣고 작성한 감상문의 일부입니다. 지난 단오절 기간에는 많은 세미나와 활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어 가는 것은 큰 감사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같은 세미나를 듣고, 같은 활동에 참가해도 학생들은 각기 다른 것들을 느끼고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은 위의 두 학생의 글처럼 각자의 관점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학생들의 감상문에서 배움의 깊이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만방학교에서는 매일의 일상이 훈련입니다. 이곳 파워나지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훈련을 찾아가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학생들은 많은 성장을 이뤄가게 됩니다. 하지만 학교생활에 주도적으로 임하지 않는 태도는 때로는 학생들이 단편적인 교훈만을 얻어 가도록 합니다. 매주 작성하는 JG 감상문에도 어떤 학생들은 내용을 요약하는 것에서 그치는 반면 많은 학생들은 JG 때 들은 말씀을 기준으로 스스로의 삶을 비춰보고, 새로운 한 주를 위한 결심과 구체적인 목표 그리고 계획 등 더욱 많은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같은 원리로 매일의 삶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임하는가, 얼마나 깊게 생각하고 어떠한 목적을 발견하는가에 따라 학생들이 얻어가는 것은 달라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인 능력을 길러가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객관적인 조언을, 때로는 격려를, 때로는 훈계를 장작으로 삼아 학생들의 마음속 ‘적극성'이라는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도우며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상황에서 학생들이 더욱 많은 것을 배워가도록 합니다. 특별히 선생님들과 부모님의 도움 속에 일어나는 자신의 상황을 분석하고, 올바른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하도록 하는 과정은 학업 방면에서 공부력을 길러가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에서도 훈련의 목적을 발견하고 주도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파워나지움은 매일의 작은 일상이 훈련이 되는 곳입니다.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의 협력 속에 학생들이 진취적인 태도로 주어진 훈련과 그 목적을 발견하게 되기를,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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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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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 From 만방 into the World with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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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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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하진 혼란의 시대에 필요한 인재
성경의 인물 가운데 느헤미야는 리더십이 매우 뛰어났던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이어 남유다가 멸망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로니아 제국의 포로로 잡혀갔고, 세월이 흘러 페르시아가 바벨로니아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제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다행히도 페르시아는 바벨로니아와는 달리 포용정책을 썼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에서 주목되는 사람들 가운데 단연코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황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직책을 가졌던 관리였습니다. 1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고 그 가운데 자기의 형제가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이 폐허가 됐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소식에 매우 슬퍼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본인의 소명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황제에게 예루살렘에 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했지만 성벽재건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당시의 컨센서스였습니다. 게다가 주변에 너무나 많은 방해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종의 음모와 비방과 술책으로 훼방을 했고 심지어 느헤미야를 암살하려는 시도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런 상황에서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려움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설득하고 격려하여 결국 동일한 사명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성벽재건이라는 느헤미야 프로젝트는 52일만에 완성되었습니다. 요즈음 시대로 말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거의 5G급의 속도로 진행하였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만방이 강조하는 세븐파워를 골고루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 강렬한 사명감, 삶의 현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인 정직함,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신뢰, 도전정신,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 사명에 대한 열정,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탁월한 조직력,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소통능력,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향한 격려, 목적을 향한 강한 집중력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느헤미야입니다.
요즈음 세상은 점점 혼돈스럽고 도전하기 보다는 안주하려는 사람들의 멘탈을 보며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과 혼란의 시대와 세상에서 느헤미야 같은 인재들은 바로 만방파워나지움에서 훈련되고 길러지는 제 2, 3의 만방인들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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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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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정 만방에서 선생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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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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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하진 만방인이란?
“신입생 선발 계절을 맞아 주변에서 만방에 대해 여러 지인들께서 물어오고 있습니다. 강남권의 유학원들에서 만방국제학교 소개를 많이 해주신다고 합니다. 참 신기하게도 만방이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한 학교 이전에 청소년 시기에 학생들로 하여금 올바른 신앙과 가치관을 형성하여 바르게 자라갈 선한 능력을 길러주는데 힘을 쓰는 공동체라고 이야기를 하면, 신앙인인 학부모님들은 그 이유 때문에 만방에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지는데, 믿음이 없는 학부모님들은 그 이유 때문에 학교 입학을 주저한다는 것입니다. 우수한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 지향과 올바른 가치관 형성과 더불어 선한 능력을 키워가는 방향 지향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
위의 글은 한 학부모님의 편지 일부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우리의 자녀들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교육과 관련하여 ‘명문대학이냐 선한 영향력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한국의 교육에서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제도는 성적으로 줄 세우는 제도, 즉, 한우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1등급, 2등급이라는 등급제도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No.1만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 각자가 Only 1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만방에서 더 이상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문 닫게 해주세요.”
이 마음은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습니다. 만방은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에 많이 보내고 있는 명문학교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유명대학에 몇 명 보내느냐에 목숨 걸지 않습니다. 그러한 목표는 선생님들을, 부모님들을, 그리고 학생들을,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 뿐입니다. 만방의 선생님들은 ‘우리의 자녀들이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도록 돕는 것에 전력을 다합니다. 스피리추얼 파워, 멘탈파워, 모럴파워, 네트워크파워, 브레인파워, 리더십파워, 바디파워 등 우리의 자녀들은 다채롭고 다양하며 균형있게 선한 능력을 쌓아야 합니다. 이 사명으로 인하여 만방의 선생님들은 ‘오늘도 학생들을 위해 죽을 각오’로 살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로지 대학입학만을 위하고 본인만 잘살면 된다는 사람은 그야말로 ‘빨대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선함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재는 결코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채널인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능력있는 Servant Leaders, 이들이 ‘만방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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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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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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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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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 보물찾기
“싱가포르의 명문대를 다니다 보면 세상의 기준에 저를 맞추고자 할 때가 많아집니다. 금융권, 컨설팅, 빅 테크 기업의 취직 등을 바라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고등학교 때 꿈꿔왔던 사명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2년 동안 단 한 번도 누군가와 ‘사명’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과 진학 상담 시간을 가질 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It is about finding a college that fits you, not you who fits the college. You already have a good story to tell. Make your story. No, actually, FIND your story.” 이 이야기를 스스로 골똘히 묵상해보니 어쩌면 이 말은 제가 그 학생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하고 계셨던 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명은 좋은 기업과 세상이 원하는 넓은 길에 스스로를 맞추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저의 과거 속에 사명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그를 찾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순종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한 만방졸업생의 고백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보물찾기이다.”
사람은 저마다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돈이든 성공이든 권력이든 각자만의 고유한 보물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곰곰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 보물은 그리스도이시며 그분과 함께하는 사명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제자는 그 사명을 찾는 것이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제자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지는 순간입니다.
며칠 전에 이 제자가 군대에서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가장 교만할 수 있는 시기는 당연하게도 인생이 너무나 잘 풀리고 편하다고 느끼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해군 통번역병에 합격하고 해군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훈련을 받았었던 것 같습니다. 내게 주어졌던 많은 사람들을 믿음의 눈,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제가 할 수 있는 섬김을 하고… 그 마음이 가장 가난했던 시기에 저는 예수님을 가장 가깝게 만났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 많을수록 우리의 영혼은 예수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요즘 많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10학년 때 모두가 One word를 정할 때 저는 ‘겸손’이라는 키워드를 정했고, 9학년 때는 ‘포기’라는 키워드를 정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만방의 모든 선생님들은 ‘청출어람’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쁨과 감사를 자주 경험합니다.
제자가 제자를 낳고, 제자가 제자를 낳고, …. 우리에게 주신 또 하나의 보물, 그것은 바로 ‘제자’임에 만방의 선생님들은 항상 감사가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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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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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하진 기쁨은 결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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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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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성 On or off topic
요즘 SAP11 학생들의 절반 이상은 AP Capstone Diploma를 향한 첫 번째 과목인 AP Seminar의 PT(Performance Task)2 준비가 한창입니다. 다가오는 IMP(개인연구발표)와 IWA(개인연구보고서)제출 기한의 압박감에, 관련성과 신뢰성을 충족하는 자료 조사의 힘듦에, 내용 구성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로 골머리를 썩히며 애쓰는 모습이 보일 수록 학생들의 QUEST(AP Capstone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역량들로 Question&&Explore, Understand&Analysis, Evaluate Multiple Perspective, Synthesize ideas, Team/Transfrom&Transmit의 두문자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PT1이 팀원들과 여러 관점에서 research question에 대한 자료 조사와 종합을 하는 literature review의 느낌이 강하다면, PT2는 직접 자신의 argument를 담은 보고서 작성(2000단어 내외)과 Oral defense를 포함한 발표를 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학생들과 여러 Sample들을 참고하며 직접 Rubric으로 채점을 하면서 분석하다보면 학생들도 안타까워하는 sample이 간혹 있습니다. 각 row에서 미흡해서 0(Zero)를 받은 경우도 그렇지만, Off-Topic으로 전체 0점을 받게 되는 경우 입니다. 한달 이상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준비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더 큰 공감이 갔을 것입니다. Rubric 상단의 On/Off topic decision에는 제시된 자료들 중에 최소한 2가지 자료들 간의 주제 연관이 없으면 off-topic으로 간주되어 0점을 받게 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분명한 방향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College Board에서는 On/Off topic decision을 설명하기 위해 운전자와 도로의 비유를 제시합니다. 이 비유를 보면서 학생들이 AP Seminar 수업 뿐만아니라 배움의 목표 설정과도 큰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로는 Off the road 입니다. 도로 밖에서는 운전을 할 수 없으므로 목적지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목표 설정이 의미가 없습니다. IWA 자료들 중 2개를 자신의 Research topic과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노력 여부에 관련없이 0점이 되듯이, 이는 마치 배움의 목표 설정에 아예 실패한 상황, 마음이 배움의 장소에 위치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Off-topic 샘플을 보면 노력을 열심히 했다는 흔적 또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물리적으로 배움의 장소에 있더라도 마음이 그 장소에 없다면 배움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만방에 왜 왔는가?를 다시 생각해보며 마음으로 On the road 하기를 기대합니다.
두번째로는 On the road이나 운전석이 아닌 뒷좌석에 앉아 있는 상황입니다. Rubric의 요구에 맞게 2가지 자료와의 연관이 아닌 1개만 연관시킨 경우로써 분명한 목표 설정에는 실패한 상황입니다. 이 경우에는 관련된 Row에서 High 점수를 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적극성이 결여된 배움으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 그 이상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목표설정 없이는 불충분한 배움이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왜 배우는가?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찾고 자기 주도적인 자세로 배움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는 On the road이고 운전석에서 직접 목적지까지 운전하는 상황입니다. 분명한 목적을 설정한 상황으로, 직접 핸들링을 하고 엑셀, 브레이크를 밟으며 목적지로 향해가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일단 이렇게 시작한 경우 자신의 Argument를 펼치기 위한 자료들을 찾는 노력, 결론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 등 차례대로 쉽지 않은 장애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셋입니다. 내적, 외적 요인으로 운전의 과정이 항상 순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만방에서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먼저 앞에 가는 운전자들인 형, 누나들을 보며 희망을 얻기 마련입니다. 만방학생들이 과정을 소중히 여기며, 형, 누나 들에게 배운 것 처럼 뒤에 따라오는 운전자들인 동생들에게 만방에서의 배움의 정신을 보여주는 학생들로 살아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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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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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하진 우리가 보는 이야기 vs. 하나님이 보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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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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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 궁극적인 목표와 과정들
3월 학부모 필독서 <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을 읽으면서 머스크의 인생을 관통하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상 깊었습니다. 그가 일주일에 80시간 이상을 일하는 워커홀릭으로,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사람으로 사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페이팔, 솔라시티, 테슬라, 스페이스X 등 그가 이끌었던, 이끌고 있는 사업의 성장 자체도 놀랍지만 이 모든 과정은 이윤 자체 목적이 아닌, 인류를 화성에 보내겠다는 머스크 본인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머스크가 보여주는 도전정신과 긍정적인 마인드셋, 돌파력은 우리 학생들이 길러야할 능력이기도 합니다. 이 능력들은 사명감에 기반한 목표 설정이 우선할 때 그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더욱 빛날 것입니다. 다만 때로는 급격한 변화와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들이 우리의 불안을 자극하며 하나의 과정을 목표로 착각하게 만들며,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흐릿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방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말씀 안에서 찾고, 자신의 그릇에 맞는 최선의 쓰임을 기대하며 실력과 인성을 기르고, 어느 곳에서라도 가르침대로 살아야함을 교육합니다. 이러한 학생들에게는 대학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목표에 따라 살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목표를 향한 과정에서 세븐파워를 기르며 전세계 명문대학 진학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됩니다.
최근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강남 8학군의 중동고 교장 선생님의 일침을 통해 대학이 학교 교육의 목적이 될 수 없음을 공감했습니다.
“여기는 사람을 교육하는 학교지, 입학 성적으로 먹고사는 학원이 아니다’ ‘앞으로도 서울대에 몇 명 보냈느냐에 일희일비 마시라”
“좋은 대학을 나와야 인생을 편하게 잘 살 수 있다는 편견이다. 그런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편견을 가진 학부모가 있는 이상 우리나라 교육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참된 교육인의 외침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변하기 어려운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육의 3주체(학생-학부모-교사) 중 어느 하나라도 같은 곳을 지향하지 않고, 협력치 않는다면 그 교육의 목적은 달성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명문대학을 최종 목표로 삼지않고 바른 인성과 세븐파워를 균형있게 기르는 데 긴밀히 협력해주시는 만방 학부모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만방의 학생들이 과정의 한 부분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궁극적인 푯대를 향해 다음 스텝으로 계속에서 도전하고 돌파해 나가는 인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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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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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 네가 진실로 낫고자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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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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