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함께 나누는 이야기] 말씀세미나 감상문
Poster 이정준, 공동연, 조정민 Date 2022-05-04 Visit 104

아시아 나무 / 동남아시아 가지 이정준(10학년)
매 학기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씀세미나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이렇게 성경적인 분위기를 갖고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 살면서 성경적인 지식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주님의 사람이 나의 주변에 있고 직접적인 도움과 영향을 준다는 사실 역시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사도신경은 모태신앙인 나에게는 수학 공식과도 같은, 즉 이해하지도 못하고 교회에서 자주 읽으니 자연스럽게 외워진 ‘지식’ 수준에 불과하였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는 너무 크다. 예를 들어 성경 속 이야기인 ‘오병이어'의 기적 스토리를 알고 있는 것까지는 ‘지식'에 속하지만, 그 기적이 형태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오늘날 나에게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은 ‘믿음’이라고 정의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에게 사도신경은 ‘지식'이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를 방해하고 믿음 생활을 못하게 막아 믿음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직 나에게는 의심 0%의 믿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믿지 못하는 성경적 사실들도 너무 많고 이해가 안 되는 것들 역시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삶을 살아가다보면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어떤 일들은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 같다라는 마음이 들고 있기에 천천히 성장할 수 있는 사실에 감사한 것 같다. 특히 이번 중간고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참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모두 하나님께 솔직한 나의 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힘을 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앞으로도 만방학교 안에서 다른 기준인 ‘성경'에 맞춰 살아가며 영적으로 더 건강해지고 굳건해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아시아 나무 / 동남아시아 가지 공동연(10학년)
이번 말씀세미나의 주제는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였고, ‘믿음'이라는 추상적이고 접근하기 어려웠던 주제에 관하여 명확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평소에 갈라디아서 3장 11절 말씀을 정말 좋아하는데,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평소에 이 말씀을 묵상할 때면 이 ‘믿음'이라는 글자로 인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가끔씩 믿음대로 살리라라는 말씀을 들을 때면 문득 내가 생각하고 확신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모습이라 착각했다. 규칙은 어겨 놓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뻐했으니 좋아하실 거야 등 여러가지 잘못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라는 말이 믿겨지는가 그저 알고 있는가? 믿는다면, 믿음대로 살고 있는가? 한번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천국에 갈 것을 믿으니, 오늘을 천국백성처럼 사는 것이 믿음의 증거다”, “믿음은 과거의 것 혹은 미래의 것을 현재로 끌어오는 것이다.” 이 말들이 정말 큰 감동을 주었다. 우리가 믿는다 믿는다 외쳐도 결국에 믿음대로 살지 못하면 믿지 않는 것이다. 공부라는 예배자인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다는 것을 믿음으로 공부하고 있나요?” 참 공부에서도 삶에서도 “나”를 시인하기란 참 어렵다. 하지만 자기 시인 없이는 믿음이 생겨날 수 없다.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이다.


“이제는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외쳤던 바울 목사님의 메시지를 믿기에, “이제는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아시아 나무 / 동남아시아 가지 조정민(10학년)
내게 있어서 지식과 믿음의 차이는 확신의 정도였다. 무언가를 배우며 지식을 얻고, 그 지식을 확신으로 굳혀 생각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구영 목사님께서 정의해주신 지식과 믿음의 차이를 듣고 ‘나는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지 않은가?’하고 돌아볼 수 있었다. ‘믿음’은 과거에 일이나 무언가를 배워서 지식을 그대로 얻는 것 이상으로 오늘 내게 그 일이 역사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것이다. 두 단어의 정의에 이어 목사님께서는 사도신경을 말씀해주시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해 나에게 큰 확신을 심어주셨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사도신경’이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데에 이어서 크리스천이라는 믿음을 줄 뿐만 아니라 큰 기준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가끔씩 내 안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전능하시고,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아버지이신 분이다.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 그 위대하신 존재에 대한 확신을 주셨다. 

JD숙제 중에 ‘예수는 살아있다’라는 영화를 가족들과 함께 보고 감상문을 쓰는 숙제가 있었는데, 하나님을 아직 믿지 않는 아빠께서는 이 영화를 보시고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믿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때는 나도 의문이 들었었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공기도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하시고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그 진리를 우리는 알고 믿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의 법칙과 경계들도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냥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의 계획하심 단 그의 창조하심이라 생각하니 믿음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문정빈 선생님께서 저번 주 일요일날 설교해주신 ‘공부하는 예배자’도 생각이 났는데 이 또한 우리가 예배자라는 그 본질을 믿음으로써 공부하여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존재가 더 전지전능하게 느껴졌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라는 존재로 우리 곁에 오신 것이 아닌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심을, 또 하나님의 외아들이심을 믿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아직까지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의 확연한 차이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의 희생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핍박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나 되게 큰 축복받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의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 나는 더 고백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주님을 찬양함으로 더 높이고 간증함으로 더 나누고 또 다른 여러 고백들을 하며 예수님의 구원에 진심을 다해 참여하고 싶다. 그래서 사도신경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예수님의 탄생 -> 죽음 -> 부활 -> 재림까지 다 담아놓은 사도신경이기에 더 마음속 깊이 새기며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더욱 큰 믿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도신경을 그냥 주문처럼 읽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생각하며 읽는 내 하나의 고백이 되도록 열심히 외울 것이다. 나의 본질의 방향성과 목적성을 잃지 말고 굳건한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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